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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작의 추억
[특별연재]기획종북③
문경환 기자
기사입력: 2012/07/03 [08:52]  최종편집: ⓒ 자주민보
독재자들은 국민들의 저항으로 권력을 잃을까봐 항상 안절부절 못한다. 이들은 저항을 무마하기 위해 갖가지 조작사건을 만들어 국민들의 이목을 집중시키고 민주화 세력, 진보 세력을 고립시킨다. 최근 한국 사회를 휩쓸고 있는 종북 논란도 근본에서는 다를 게 없다. 과거 사건들을 돌아보면서 교훈을 찾아보도록 하자.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 유서대필 조작사건

첫 번째로 돌아볼 사건은 한국판 드레퓌스 사건이라 부르는 유서대필 조작사건이다.

1991년 노태우 정권이 각종 비리사건으로 위기를 겪고 있을 무렵, 강경대 열사 치사사건이 발생하였다. 전국에 반정부시위가 끊이지 않았고 김기설, 박승희, 김영균, 천세용 등 13명에 달하는 열사들이 분신, 투신, 의문사로 사망했다. 정부는 국민들의 저항이 심상치 않음을 느끼고 정국을 반전시킬 방법을 모색했다. 그리하여 열사들의 죽음에 배후가 있다는 주장을 펴기 시작한다. 그리고 이를 증명하기 위해 유서대필 조작사건을 터뜨린다.

1991년 5월 8일 김기설 전민련 사회부장이 서강대 본관 5층 옥상에서 분신 후 투신하여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한다. 옥상에는 유서 2장이 있었다. 그런데 느닷없이 검찰이 김기설씨의 유서를 강기훈 전민련 총무부장이 대필했다며 구속한다. 유서를 대필한다는 황당한 주장이 나온 이유는 연이은 죽음이 사실 누군가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논리를 만들기 위해서였다.

검찰은 국립과학수사연구소(국과수) 필적감정 결과를 근거로 강기훈씨를 자살방조 혐의와 이적단체 가입, 이적 표현물 소지 등의 혐의로 기소하였다. 검찰은 재판 과정에서 강기훈씨를 ≪목적을 위해서는 동료의 생명까지도 혁명의 도구로 사용하는 좌경혁명분자≫로 비난했다. 법원은 ≪확실한 심증을 형성하지 못했다≫면서도 ≪물증은 없으나, 정황증거로 유죄가 인정된다≫는 어이없는 판결을 내렸다.

당시 검찰은 국민을 속이기 위해 김기설씨의 중학교 시절, 군복무 시절 글씨체와 유서의 글씨체를 공개했다. 김기설씨는 중학교 시절은 악필이었다가 군복무 시절에는 정자체, 전민련 활동을 하던 시절에는 흘림체로 글씨체를 계속 바꿨다. 이 점을 악용해 마치 유서의 글씨체가 다른 사람 글씨체인양 국민들을 속인 것이다. 정작 중요한 전민련 활동 시기 글씨체는 공개하지 않았다. 언론들도 검찰 주장을 받아쓰기 바빴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마무리되지 않았다. 지난 2007년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이 사건을 조작으로 결론내리고 재심을 권고했다. 결정적 증거였던 국과수 필적감정에 문제가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당시 필적감정을 맡았던 김형영 문서분석실장은 몇 해 뒤 다른 사건과 관련해 뇌물을 받고 허위로 필적감정을 해준 혐의로 구속되었다. 다른 주요 증인 진술도 조작되었음이 드러났다.

마침내 2009년 서울고등법원이 재심청구를 받아들였다. 그런데 검찰이 재항고를 하면서 이 사건은 대법원에 올라갔다. 그런데 3년이 다 돼가는 지금까지도 대법원은 재심청구를 받아들일지 말지 결정하지 않고 있다. 사법부의 잘못을 감추고 싶은 것이다. 

이처럼 유서대필 조작사건은 검찰, 언론, 법원이 공모한 대국민 사기사건이었다. 이를 통해 정권은 진보 세력을 부도덕한 집단으로 고립시키고 국민들의 저항을 무마할 수 있었다.

한국판 가미가제, 정원식 총리

유서대필 조작사건과 비슷한 시기에 일어난 사건이 하나 더 있다. 이른바 정원식 계란투척 사건이다. 이 사건은 대중의 폭력을 유도해 도덕성을 공격하는 방식의 전형적인 사건이다.

정원식 전 총리는 전두환 정권 시절부터 문교부 장관으로 있으면서 전교조 탄압에 압장서 1500명의 교사를 해직, 파면시켰고 이에 항의하는 대학생들도 무더기 징계한 장본인이다. 장관을 그만 두고 대학 강의를 하던 정원식은 노태우 정권의 부름을 받고 국무총리가 되었다.

정원식 전 장관이 1991년 6월 3일 한국외국어대학교 교육대학원에서 마지막 강의를 한다고 발표하자 대학생들은 독재정권의 시녀이자 교사, 대학생 탄압의 앞잡이인 정원식 퇴진을 요구하는 시위를 벌였다. 특히 당시는 대학생들의 분신, 투신이 급증하던 시기여서 대학생들의 분노가 극에 달해 있었다. 대학생들은 마지막 강의가 있는 날 달걀과 밀가루를 투척할 계획을 세웠다. 그러나 이 계획은 사전에 유포되었고 주변에서 정원식에게 테러가 우려되니 수행원을 동반하라는 건의를 하였다. 그러나 정원식 전 장관은 수행원 없이 단독으로 강의를 나갔다.

결국 흥분한 수백 명의 대학생들이 정원식 전 장관에게 달걀과 밀가루를 투척했고 이 장면은 언론에 그대로 노출되었다. 이로 인해 노태우 정권을 규탄하면서 대학생들을 우호적으로 대했던 여론은 순식간에 반전됐다. 대학생들은 패륜아로 낙인찍혔고 노태우 정권은 이 사건을 계기로 공안정국을 펼쳤다.

물론 이 사건은 대학생들이 흥분하여 여론을 고려하지 않고 과도하게 행동한 측면이 있었다. 이런 상황을 이용해 수행원도 없이 등교를 강행한 정원식 전 장관은 자살특공대로서 임무를 훌륭히 수행한 꼴이 되었다.

<셀프 폭행>으로 업그레이드

이처럼 진보개혁세력의 도덕성을 공격하기 위한 조작사건은 최근에도 빈번하다.

2009년 1월 24일 용산참사 현장 앞에 주차돼 있던 전경버스에 불이 났다. 경찰은 ≪이들 남성들이 전국철거민연합이 쓰여진 조끼를 입고 있었다≫며 철거민들이 방화했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전경버스 바로 옆에서 농성 중이던 대책위 관계자들은 자신들이 목격한 방화범들은 조끼를 입고 있지 않았다면서 ≪이들이 불을 놓고 택시를 타고 달아나는데도 주변에 있던 전경들을 그냥 구경만 하고 있었다≫고 증언했다. 국민들은 ≪세상에 어느 멍청이가 나보란듯이 눈에 띄는 조끼를 입고 전경차에 불을 지를까?≫라며 경찰의 발표에 냉소를 보냈다.

2011년 11월 26일에는 박건찬 종로경찰서장이 시위대 한가운데서 부하 경찰에게 폭행당하는 미스터리 사건이 발생했다. 이날 시위는 한미FTA 반대 시위였다. 박 서장은 시위대 안의 국회의원들이 불렀다며 시위대 한 가운데를 헤집고 들어갔다. 그러나 박 서장을 부른 국회의원은 없었다. 박 서장은 누군가와 통화를 한 뒤 곧바로 시위대 진입을 강행했고 이 과정에서 폭행을 당했다고 주장했다. 에둘러 갈 수도 있었는데 굳이 정면돌파를 시도한 것이나, 애초에 사복을 입고 있다가 정복으로 갈아입은 점, 봉변을 당하자 곧바로 기자회견을 열고 종이에 적힌 글을 읽고 보도자료를 배포한 점, 폭행당했다는데 흔적도 없는 점 등 수상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다.

결정적으로 경찰이 신속히 공개한 사진에 찍힌 폭행 가해자가 같은 종로경찰서 소속 고 아무개 경사라는 점이 알려지면서 <셀프 폭행>이라는 비난이 쏟아졌다. 그러나 언론들은 인터넷이 이 사실이 널리 퍼지기 전까지 박 서장이 시위대에게 집단 구타당했다는 경찰의 발표만 열심히 받아 적었다.

누가 봐도 이 사건은 시위대의 도덕성을 훼손하기 위해 경찰서장이 가미가제의 심정으로 뛰어든 자작극이다. 그런데 법원은 놀랍게도 폭행 혐의자 김씨에게 유죄를 선고했다. 박 서장 모자를 잡아당긴 게 피해자에게는 폭행에 해당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알 수 없는 누군가 주먹을 휘둘렀는데 같은 시위대이기 때문에 공모한 것으로 봐야 한다고 판결을 내렸다. 언론조차 창피해서 더 이상 보도하지 않은 사건을 두고 사법부가 경찰의 손을 들어 준 것이다.

도덕성에서 열세인 독재정권은 여론의 반전을 노리고 진보개혁세력의 도덕성을 훼손하기 위한 조작사건을 일삼는다. 사건의 현상만 보고 흥분해서는 안 되는 이유를 우리는 과거 경험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다. 지금 매일같이 언론은 종북마녀사냥을 하고 있지만 역사는 언제나 진실의 편이었음을 명심하자. (2012.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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